알래스카 국경은 왜 미국의 영토가 되었을까요? 얼음처럼 차갑고 푸른 바다와 울창한 녹지가 어우러진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사들인 이래로 미국의 영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남동부는 캐나다와의 국경이 다소 불편하게 튀어나와 있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알래스카의 국경을 두고 벌어졌던 미국과 캐나다 간의 치열한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의 알래스카 탐험과 정착
1741년, 러시아 제국의 의뢰를 받은 덴마크 항해사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탐험대가 알래스카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후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주요 모피 공급처로 개발되었고, 해안선을 따라 러시아인들의 정착지와 교역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서쪽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영국과의 영토 분쟁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와 영국의 국경 설정
1825년, 러시아와 영국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국경을 공식적으로 정했습니다. 국경은 포틀랜드 운하를 따라 56도선까지 북쪽으로 올라가고, 그 지점부터는 산맥을 따라 141도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당시의 지도와 실제 지형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 해석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알래스카 방어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과 모피 무역의 쇠퇴로 인해 알래스카의 중요성은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1867년,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판매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논쟁
1871년, 캐나다는 알래스카 국경을 명확히 하기 위해 미국에 국경 측량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남북 전쟁 직후 국가 재건에 집중해야 했고, 알래스카는 기후가 험악하고 자원이 부족한 무가치한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골드러시와 국경 갈등의 재점화
1890년대, 캐나다 클론다이크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미국과 캐나다는 이 지역의 국경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시작했습니다. 두 나라는 각각 자신들의 해석을 주장하며 갈등을 이어갔습니다.
국제 재판과 최종 국경 설정
20세기에 들어서며, 양국은 국제 재판을 통해 국경을 확정짓기로 했습니다. 미국 측 위원 세 명, 캐나다 측 위원 두 명, 영국 측 위원 한 명이 참여한 재판에서 영국 측 위원이 미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최종 국경이 설정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알래스카의 해안 지역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고, 캐나다는 이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NEWS > Consumption Tip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건부 운전 면허 교통사고 줄이기 위한 정부의 다섯 가지 대책 (0) | 2024.05.24 |
---|---|
단 4개월, 스페인의 아메리카 패권 상실기 (0) | 2024.05.24 |
모기 퇴치 방법 4가지: 여름철 필수 정보 (0) | 2024.05.23 |
경기도 여성 1인 가구 안심 패키지 지원 방법 (0) | 2024.05.23 |
그린란드는 왜 덴마크의 자치령이 되었을까? (0) | 2024.05.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