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국토의 약 80%가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북극점과 매우 가까이 접해 있어 내륙 지역은 1년 내내 영화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 조건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그린란드 전체 면적의 1% 미만에 불과하며, 인구도 약 56,000명에 불과합니다. 해안 지역에만 몰려 있는 인구 밀도를 보면 그린란드의 험난한 기후가 체감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한 땅 그린란드는 독립된 국가가 아닌 덴마크의 자치령입니다. 그린란드는 어떻게 덴마크의 일부가 되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일부가 된 과정과 현재의 자치권을 가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린란드의 초기 역사
그린란드의 최초 역사는 기원전 2500년 경 시베리아에서 북미로 이주했던 인류가 그린란드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쇠퇴와 재정착 과정을 거치며 다른 문화 및 부족들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유럽인들이 그린란드에 본격적으로 정착을 시작한 것은 10세기 후반으로, 982년경 살인 사건으로 인해 추방당한 붉은머리 에릭이 그린란드를 발견하고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에릭은 이 섬을 "그린란드"라 명명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이로 인해 많은 유럽인들이 그린란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그린란드
당시 아이슬란드는 주민 대다수가 노르웨이 혈통이었으며, 13세기경 노르웨이 왕국과의 조약으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가 노르웨이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부터 그린란드의 기후가 점점 추워지면서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해양 생물의 무역이 어려워지면서 북유럽 정착민들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15세기 후반에는 북유럽 정착민들이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로는 이누이트들이 그린란드에 남아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와의 연결
17세기 이후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은 그린란드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탐험과 정착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혹독한 기후와 빙하로 인해 이러한 시도는 여러 차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여러 원정을 시도했으며, 1721년 한스 에게데 목사가 그린란드에 정착하며 이누이트들에게 루터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덴마크는 이후 지속적으로 그린란드에 정착지를 설립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근대의 그린란드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잃게 되었지만,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영토로 남게 되었습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무역을 금지하고 외국인의 접근을 막아 경제적 종속을 이어갔습니다. 20세기 초반, 덴마크는 그린란드 전체가 자국의 영토임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열강들과 협상을 벌였고, 1933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지배권이 인정되었습니다.
현대의 그린란드
1979년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홈룰 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으로 그린란드 의회는 교육, 보건, 인프라 등 대부분의 내부 정책을 독자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자치법이 제정되어 그린란드는 자원 통제권, 사법 시스템, 국제법 사항 등을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린란드는 여전히 덴마크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독립에는 많은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NEWS > Consumption Tip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기 퇴치 방법 4가지: 여름철 필수 정보 (0) | 2024.05.23 |
---|---|
경기도 여성 1인 가구 안심 패키지 지원 방법 (0) | 2024.05.23 |
2024년부터 우리 일상에서 사라지거나 바뀌는 7가지 (0) | 2024.02.16 |
2023년 한국 청년 세대의 어려움과 그 해결책: 주거, 경제, 미래의 불확실성 (0) | 2023.11.05 |
비행기 좌석 선택 꿀팁: 덜 흔들리는 좌석은 어디? (0) | 2023.11.01 |
댓글